관동법원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지난 [중국을 걷다] 제7편에서는 중국 대련 여순(旅顺)에 남아 있는 관동법원 옛터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안중근 의사가 재판받았던 법정에 서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을 비롯해 일제에 맞섰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만났습니다.
역사책 속에서만 보았던 이름들을 낯선 중국 땅에서 다시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존경과 감사.
관동법원을 나오면서도 그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장소가 있습니다.
관동법원에서 재판받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옥고를 치렀던 곳.
바로 여순감옥(旅顺日俄监狱旧址博物馆)입니다.
관동법원에서 불과 1km 남짓, 여순감옥으로 향했습니다
관동법원 관람을 마치고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여순감옥.
두 곳은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차로 이동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100여 년 전에도 재판과 수감이라는 두 공간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런데 여순감옥에 도착하자 관동법원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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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감옥의 정면모습 |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관동법원에서는 비교적 조용하게 전시물을 살펴볼 수 있었지만, 여순감옥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중국인 관람객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의외였습니다.
그런데 관람을 시작하면서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중국인들에게도 이곳은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여순감옥을 단순히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감옥’으로만 생각하면 이곳의 역사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순과 대련 일대는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이 충돌했던 지역이었고, 이후 일본의 지배 아래 놓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수감되었습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러시아인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이 감옥을 거쳐 갔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수많은 중국인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중국인들에게도 일제의 침략과 지배를 기억하는 마음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중국인들에게도 일본의 중국 침략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역사입니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부모도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감옥의 벽과 전시물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들도 그 시대를 다시 기억하고,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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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감옥 내부의 ‘고난과 항쟁(苦难与抗争)’ 역사 전시관 |
입구에 들어선 순간, 정말 감옥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여순감옥을 관람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관람 동선이었습니다.
입구에서 들어가면 정해진 방향을 따라 계속 이동해야 했습니다.
중간에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도 거의 없었습니다.
앞으로.
또 앞으로.
좁은 복도와 수감실을 지나 계속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관람객의 이동을 관리하기 위한 동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걷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옥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들어올 때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였지만, 오래된 벽과 철문 사이를 계속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관광지를 걷고 있다는 느낌보다 누군가 실제로 갇혀 살았던 공간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자 조금 전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방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약 2시간, 생각보다 훨씬 큰 감옥이었습니다
여순감옥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입구에서 출구까지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수감실과 복도뿐만 아니라 당시 감옥의 생활과 관리 체계를 보여주는 여러 시설과 전시공간들이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감옥을 둘러보는 데 얼마나 걸리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공간을 지나면 또 다른 공간이 나오고,
그 공간을 지나면 다시 좁은 복도와 수감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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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감옥의 사형집행장을 재현해놓은 모습 |
그렇게 한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면 이곳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조금씩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긴 동선을 걸으며 자꾸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광객인 저는 두 시간이 지나면 이곳을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여 년 전 이곳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이 길의 끝에는 출구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안중근 의사가 머물렀던 방 앞에 섰습니다
이번 여순감옥 관람에서 저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곳은 역시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공간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체포되었고, 여순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이곳 여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역사책에서 배웠습니다.
1909년 하얼빈 의거.
1910년 순국.
시험을 위해 연도를 외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그 방 앞에 서보니 연도나 사건명보다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실제로 이 작은 공간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구나.”
그 순간 안중근이라는 이름이 역사책 속의 한 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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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머물렀던 독방의 모습 |
가족이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작은 공간 앞에서 한동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남긴 또 하나의 꿈, 동양평화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하얼빈 의거입니다.
하지만 여순에서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다른 안중근 의사를 만나게 됩니다.
총을 든 독립운동가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의 미래를 고민했던 사람.
그는 옥중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려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로 침략하고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1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다시 읽어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를 다시 만나며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쏜 총알 한 발만이 아니라, 그가 마지막까지 꿈꾸었던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또 한 번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 한국 독립운동가 특별전시관
안중근 의사의 수감실과 함께 이번 관람에서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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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전시관 내의 안중근의사 흉상 |
낯선 중국의 감옥 안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시 마주하는 느낌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제7편 관동법원에서도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곳 여순감옥에서 다시 그들의 흔적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고,
그 뒤에는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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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흉상과 유언 |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유명한 이름만으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겠지요.
관동법원과 여순감옥은 함께 가보셨으면 합니다
대련이나 여순을 여행하실 계획이 있다면 저는 가능하면 관동법원과 여순감옥을 함께 방문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두 장소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곳을 함께 걸어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관동법원에서는 재판의 흔적을 만나고,
여순감옥에서는 그 재판 이후의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제7편에서 안중근 의사가 앉았던 법정을 바라봤을 때의 느낌과,
이번 제8편에서 그가 머물렀던 수감실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장소를 따로 떨어진 관광지라기보다 하나의 역사여행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빠르게 사진만 찍고 나오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걸어보셨으면 합니다.
관동법원과 여순감옥을 모두 돌아보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여행은 아름다운 것만 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대련 가족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만 해도 멋진 바다를 보고, 싱싱한 해산물을 먹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여행의 중요한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여순’이라는 두 글자 덕분에 전혀 다른 여행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관동법원을 걸었고,
여순감옥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100여 년 전 이곳을 지나갔던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만을 찾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로는 보고 싶지 않은 아픈 역사를 만나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다시 기억하는 것 역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요.
여순감옥을 나오면서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분들이 꿈꾸었던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그분들의 이름과 그분들이 걸었던 길을 잊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여순 여행을 마치며
[중국을 걷다] 제7편 관동법원과 제8편 여순감옥.
두 편에 걸쳐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오랫동안 살아가며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한국의 역사가 중국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얼빈에도, 상하이에도, 충칭에도, 그리고 이곳 여순에도 우리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을 걷다]에서는 아름다운 중국의 풍경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밥무쓰리부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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