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에서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싶다면, 시조우로 가보세요
대리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조금 고민할 것 같습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얼하이도 아름다웠고,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대리고성의 밤거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곳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조우고진(喜洲古镇)입니다.
지난 [중국을 걷다] 제2편에서 얼하이와 대리고성을 소개하면서 다음에는 백족(白族)의 전통이 남아 있는 시조우를 걸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직접 가본 시조우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즈넉한 마을이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도 아니었고, 엄청난 볼거리가 있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래된 집과 좁은 골목, 드넓은 논밭 그리고 그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조우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리고성이 여행자들이 만나는 대리라면, 시조우는 대리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시조우는 어떤 곳일까요?
시조우(喜洲)는 대리고성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오래된 마을입니다.
이곳은 대리를 대표하는 소수민족인 백족(白族)의 전통문화와 건축양식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리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백족 문화를 접하게 되지만, 시조우에서는 그것이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전시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생활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흰색 벽과 검은색 기와가 어우러진 오래된 가옥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복원된 건물도 있지만, 조금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들도 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 아침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는 집입니다.
아마 이것이 제가 시조우에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광객 사이에서 만난 백족 사람들
사실 시조우를 찾기 전에는 백족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마을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관광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유명한 골목과 상점 주변에는 여행객들이 가득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기념품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정작 이곳에서 살아가는 백족 주민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가끔 오래된 집 앞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이 보였습니다.
관광객들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집 앞에 앉아 쉬고 계시거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분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백족 분들이겠구나.”
여행지에서는 유명한 건물이나 멋진 풍경을 찾느라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조우에서는 오히려 그런 평범한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관광객에게 시조우는 몇 시간 머물다 떠나는 여행지이지만, 그분들에게는 태어나고 살아온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집과 골목이 아름다운 이유도 결국 그 공간 안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골목을 벗어나자 완전히 다른 시조우가 나타났습니다
시조우의 중심 골목을 걷다 보면 상점과 카페, 관광객이 많아 전형적인 관광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 중심을 조금 벗어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눈앞에 넓은 논밭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왜 시조우를 단순한 고진(古镇)이라고만 부르기에는 아쉬운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시조우의 진짜 아름다움은 오래된 건물만이 아니라 마을과 논밭이 하나로 이어지는 풍경에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걷는 오래된 골목 바로 너머에서 농사가 이어지고 있고, 그 논밭 뒤로 대리의 산과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멋진 사진을 찍는 장소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생활의 공간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바라보니 풍경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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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경의 시조우 |
시조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일몰이었습니다
이번 시조우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만 고르라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논밭에서 바라본 일몰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해가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넓은 들판의 색깔도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밝은 초록빛이었던 논밭 위로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고, 멀리 보이는 산과 마을은 조금씩 붉은빛으로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평선 가까이 내려갈수록 들판 전체가 황금빛으로 변했습니다.
도시에서 보는 일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높은 건물도 없고, 자동차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논밭이 있고, 그 너머로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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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에서 바라본 시조우 일몰 모습 |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한 관광지보다 아무 계획 없이 마주친 한 장면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 시조우의 일몰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논밭을 가로지르는 작은 기차도 놓치지 마세요
시조우에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경험은 드넓은 논밭 사이를 천천히 달리는 작은 관광열차였습니다.
기차라고 해서 빠르게 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주변 풍경을 바라보기에 좋습니다.
기차에 몸을 싣고 논밭 사이를 지나가다 보면 여행의 속도도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바람이 들어오고, 가까이에서는 논밭이 지나가며, 멀리에는 마을과 산이 보입니다.
특별히 무엇을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앉아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 됩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고, 어른들에게도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기차에 앉아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조우라는 곳과 참 잘 어울리는 이동수단이구나.”
빨리 이동하기 위한 기차가 아니라 천천히 풍경을 바라보기 위한 기차였기 때문입니다.
시조우에 왔다면 희주바바도 맛봐야 합니다
시조우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희주바바(喜洲粑粑)입니다.
시조우를 대표하는 전통 간식으로,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만들어 구워낸 음식입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희주바바를 굽는 가게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달콤한 맛과 짭짤한 맛 등 종류도 다양해 여행 중 간단하게 맛보기 좋습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보고 유명한 음식을 먹는 것이 어쩌면 평범한 여행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행에서 음식도 그 지역을 기억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어디선가 비슷한 냄새나 맛을 만났을 때 그날 걸었던 골목과 풍경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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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우바바 모습.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
시조우는 ‘보는 곳’보다 ‘머무는 곳’에 가까웠습니다
시조우에는 유명한 백족 가옥도 있고, 오래된 골목도 있으며,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시조우를 찾는다면 유명 관광지를 하나 더 보기 위해서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골목을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관광객이 적은 골목으로 들어가 오래된 집들을 바라보고, 집 앞에 앉아 계시는 주민들의 일상을 조용히 지나쳐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논밭으로 나가 작은 기차를 타고 천천히 들판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서두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일몰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시조우에서 꼭 해야 하는 것은 특별한 무엇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조금 천천히 걷고, 조금 오래 바라보고, 그곳 사람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며 잠시 그 풍경 속에 머물러 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대리를 여행한다면 시조우에서 반나절은 머물러보세요
대리를 처음 여행한다면 얼하이와 대리고성은 아마 빠지지 않는 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저는 시조우에도 꼭 한번 가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대리고성과는 또 다른 대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리고성이 여행자들의 활기와 낭만을 보여준다면, 시조우에서는 백족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과 농촌의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의 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습니다.
저에게 시조우는 화려해서 기억에 남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집 앞에 앉아 계시던 백족 어르신들, 골목 끝에서 갑자기 나타난 넓은 논밭, 그 사이를 천천히 달리던 작은 기차, 그리고 들판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던 일몰.
그 평범한 장면들이 모여 시조우라는 여행을 만들었습니다.
대리고성이 여행자들이 만나는 대리라면, 시조우는 대리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대리 여행을 떠올리게 되더라도, 저는 시조우의 이름보다 먼저 그날 논밭 위로 천천히 내려앉던 햇살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중국을 걷다 이야기
[중국을 걷다]는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보다는 중국의 도시와 마을을 직접 걸으며 만난 사람과 풍경, 문화와 음식을 기록하는 여행 시리즈입니다.
이번 제3편에서는 백족의 오래된 마을 시조우(喜洲)를 걸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도 관광지의 이름만 기억하는 여행이 아니라, 직접 걸으며 발견한 또 다른 중국의 모습을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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