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으로 떠난 짧은 여름휴가, 그런데 문득 여순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무거운 역사를 찾아 떠난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짧은 2박 3일의 여름휴가.
대련을 찾으신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련의 멋진 바다도 보고, 싱싱한 해산물도 먹고, 도시 곳곳의 아기자기한 장소들을 천천히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일정을 생각하다가 문득 한 곳이 떠올랐습니다.
“여순에 한번 가볼까?”
여순(旅顺).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여순커우구(辽宁省大连市旅顺口区)입니다.
대련 도심에서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지만, 한국인에게 여순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중국을 걷다] 제7편에서는 그 첫 번째 장소인 여순 일본 관동법원 구지(旅顺日本关东法院旧址)를 함께 걸어보려고 합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법정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갔는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병원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관동법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조금 의아해졌습니다.
길은 생각보다 좁았고, 언덕길의 도로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런 곳에 역사 유적지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병원이었습니다.
“잉? 병원? 우리가 잘못 찾아온 건가?”
차 안에서 주소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병원 건물들 사이에 오래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려한 관광지의 입구도 아니었고, 거대한 기념관도 아니었습니다.
그 작은 건물이 바로 우리가 찾던 관동법원 옛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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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찾은 관동법원의 모습 |
나중에 이곳의 역사를 살펴보니 왜 병원 사이에 법원 건물이 남아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948년부터 이 건물이 중소우의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여순시립병원과 여순커우구 인민병원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현재의 도시 한가운데 남아 있었습니다.
낯선 중국의 건물에서 발견한 한글 '입구'
차를 세우고 건물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글로 적혀 있는 입구 안내표시.
중국의 작은 역사 건물에서 한글 안내를 마주하니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뜻밖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설명해 주시는 안내자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설명을 따라 1층부터 2층까지 천천히 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법원 건물을 둘러보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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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법원 내부모습 |
그런데 설명을 듣던 중 너무나 익숙한 이름 하나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안중근.
순간 아주 오래전 학교 역사책에서 배웠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아... 맞다. 이곳이었구나.”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여순으로 압송된 뒤 재판을 받았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1910년 2월, 안중근 의사는 바로 이 법정에 앉아 있었습니다
건물 안에는 당시 법정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판사가 앉았던 자리.
검사가 있던 자리.
그리고 피고인이 앉았던 자리.
그 가운데 안중근 의사가 재판 당시 앉았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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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 당시 안중근 의사가 앉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가장 왼쪽 의자 |
그곳에 서는 순간 역사책 속의 사건이 갑자기 현실처럼 다가왔습니다.
1910년 2월.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 안중근 의사가 이 공간에서 어떤 마음으로 재판을 받았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7일부터 이곳에서 공판을 받았고,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행동을 단순한 개인의 살인행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을 수행한 것이며, 자신의 행동이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알고 다시 법정을 바라보니 공간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히 판결을 기다리는 법정이 아니라, 자신이 왜 싸웠는지를 마지막까지 세상에 알리는 또 하나의 전장이 아니었을까요.
안중근 의사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관동법원을 둘러보면서 제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뿐 아니라 일제에 맞섰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웠던 단재 신채호 선생도 있었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 역시 일제에 체포된 뒤 관동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10년형을 선고받아 여순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1936년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전시관에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일본의 침략에 맞섰던 중국의 항일 인사들의 기록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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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한켠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와 신채호 선생의 업적 |
국적은 달랐지만 그들이 맞서 싸웠던 대상과 시대의 아픔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조용해졌습니다
처음 건물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함께 관람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평범했습니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서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고,
안중근 의사의 재판 이야기와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하나씩 접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군가 시켜서 조용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공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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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께서 독립과 항일의 의지로 쓰셨다는 글귀들 |
100여 년 전.
나라를 잃었던 시대에 자신의 삶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그분들이 감당했을 두려움과 고통을 제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날 그곳을 걸으며 한 가지 마음만큼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이곳을 생각하니 의미가 조금 더 달라졌습니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시기가 광복절 즈음입니다.
매년 8월 15일이 되면 우리는 광복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 역사가 조금씩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안중근 의사와 신채호 선생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분들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순의 관동법원에 직접 서보기 전까지는 그 역사가 이렇게 가까운 공간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역사책에서는 몇 줄의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그 법정을 보고, 그들이 앉았던 자리와 재판의 흔적을 바라보니 그 몇 줄 뒤에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이 가진 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던 역사를 직접 걸어보면, 지식이 기억으로 바뀝니다.
여순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중국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가족여행의 목적은 원래 역사여행이 아니었습니다.
대련의 바다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족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떠올라 찾아간 여순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유명 관광지와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도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여순은 한국인에게 그런 곳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관동법원.
그리고 그가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여순감옥.
두 장소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순 이야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 기록하려고 합니다.
다음 [중국을 걷다] 제8편에서는 여순감옥으로 갑니다
관동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안중근 의사는 이후 여순감옥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그는 그곳에서 순국했습니다.
다음 [중국을 걷다] 제8편에서는 오늘보다 조금 더 무거운 장소를 걸어보려고 합니다.
여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旅顺日俄监狱旧址博物馆).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감방과 그가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공간, 그리고 그곳에 남아 있는 수많은 항일 인사들의 흔적을 직접 걸으며 느꼈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까지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여행지를 소개하기보다 그분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다음 [중국을 걷다] 제8편, 여순감옥에서 다시 함께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밥무쓰리부팅이었습니다.

![[중국을 걷다] 제7편 여순 관동법원, 안중근 의사가 재판받았던 역사적 장소](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h6zJdlvX3LGF1CTUoWuF2LtDOG8z8hlj9DkNYAey5UQ39plQVIQzm-rwZ8hVAztPgVygYwzRL6doG_wQdBA4p-YIu8yHN7mfy0zsOPzpQJFRKg8MpqF4eUpqlbAYcEb-fGMbj9UPB6C4PeNUdgGqjIIanGyJ5lTSvuuTtm10doetjgmXp32tZxgmp-MAw/w640-h360-rw/0068d5f1-a2fb-4308-9727-a17ea30ac6e9.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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