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중국은 어떻게 바라볼까? 그리고 중국에도 ‘그날’이 있었을까
2026년 3월 1일. 오늘은 대한민국의 삼일절입니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저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립니다. “중국은 한국의 삼일절을 어떻게 바라볼까?”
한국에게 1919년 3월 1일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민족 전체가 거리로 나와 독립을 외친 날입니다. 그 정신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 역시 일본의 침략을 직접 겪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중국에도, 역사 교과서에 굵게 남아 있는 ‘그날’이 존재합니다.
1919년, 한국의 삼일운동과 같은 해에 일어난 중국의 5·4운동
한국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난 바로 그 해, 중국에서는 1919년 5월 4일 베이징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시작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오사운동(五四运动)입니다.
발단은 파리강화회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은 독일이 점유했던 산둥반도 권리를 되찾길 기대했지만 그 권리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자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1919년 5월 4일, 베이징 대학을 중심으로 약 3천 명의 학생들이 톈안먼 광장 일대에 모여 “외교 실패를 규탄하라”, “매국노를 처벌하라”를 외쳤습니다.
이 운동은 베이징을 넘어 상하이, 광저우 등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습니다. 상인들의 동맹 파업, 노동자 파업까지 이어지면서 단순한 학생 시위를 넘어 전국적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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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운동을 다룬 많은 매체들의 모습 (출처 - 바이두) |
삼일운동과 5·4운동, 무엇이 닮았을까
두 사건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이 분명합니다.
- ① 청년과 학생이 중심이 되었다
- ②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가 배경이었다
- ③ 전국적인 확산과 민중 참여가 뒤따랐다
삼일운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면, 오사운동은 중국 근대 사상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오사운동은 이후 신문화운동, 그리고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의 사상적 토대가 됩니다. 오늘날 중국 정부가 오사운동을 매우 중요하게 기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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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항일전쟁 승리기념일’이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날이 있습니다. 9월 3일, 중국 항일전쟁 승리기념일입니다.
이는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중국이 항일전쟁에서 승리했음을 공식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국이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듯, 중국은 9월 3일을 국가 차원의 대규모 행사로 기념합니다.
대규모 열병식이 열리기도 하고, 전쟁 희생자 추모 행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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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열병식의 한 모습 (출처 - 바이두) |
중국은 삼일절을 어떻게 인식할까
중국 교과서에서 삼일운동은 “조선의 반일 민족운동”으로 간략히 언급됩니다. 특히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점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다뤄집니다.
왜냐하면 상하이는 중국 역사에서도 중요한 도시이고, 한국 독립운동과 중국 항일운동이 교차했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국 내에서 삼일절이 대중적으로 크게 조명되는 날은 아닙니다. 중국은 자국의 항일 역사와 오사운동을 중심으로 기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1919년, 다른 선택… 그러나 같은 방향
1919년. 한반도에서는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졌고, 베이징에서는 “산둥을 되찾아라”는 함성이 울렸습니다.
방법과 정치적 결과는 달랐지만, 두 나라는 모두 제국주의에 맞선 민중의 저항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삼일절을 맞아 우리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선택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사는 국경을 달리하지만, 억압에 맞선 기억은 의외로 닮아 있다는 것을요.
2026년 3월 1일, 오늘 하루만큼은 1919년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이상 밥무쓰리부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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