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를 이해하고 싶다면 저는 먼저 박물관을 찾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곳의 박물관부터 가보라.”
저도 꽤 공감하는 말입니다.
유명한 관광지는 그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박물관은 그곳이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는 각 성을 대표하는 성급 박물관이 있고, 도시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중국의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거나 출장을 가게 되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 지역의 박물관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이번 운남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리에서 쿤밍으로 이동한 뒤 제가 찾아간 곳은 운남성박물관(云南省博物馆)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제가 다른 지역의 박물관에서 느꼈던 것과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운남의 역사를 보러 들어갔는데, 어느 순간 저는 인간의 역사를 훨씬 넘어선 아주 오래된 지구의 시간을 보고 있었습니다.
운남성박물관은 조금 달랐습니다
중국의 여러 지역 박물관을 가보면 대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왕조와 역사적 사건, 도자기, 청동기, 서화와 같은 유물이 중심을 이룹니다.
물론 운남성박물관에서도 운남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히 인상 깊게 본 것은 훨씬 오래전의 이야기였습니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기도 훨씬 전의 생명체와 자연환경에 관한 전시였습니다.
공룡화석이 있었고, 오래전 책에서나 봤던 삼엽충도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박물관 관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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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장한 운남성박물관의 모습 |
왕조와 문명을 따라가는 역사 여행이 아니라, 수억 년 전 지구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에서만 보던 삼엽충을 실제로 만났습니다
운남성박물관에서 특히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 중 하나가 삼엽충이었습니다.
삼엽충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학창시절 과학책이나 지구과학 책에서였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바다에 살았던 생물.
지구의 고생대를 대표하는 화석.
저에게 삼엽충은 오랫동안 딱 그 정도의 존재였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아주 오래된 생물.’
그런데 그 삼엽충의 화석을 눈앞에서 직접 바라보니 느낌이 전혀 달랐습니다.
“이 생명체가 정말 수억 년 전 이 지구 어딘가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구나.”
책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었지만, 박물관 유리 너머의 화석은 실제 존재했던 생명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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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만 보던 삼엽충의 화석을 눈으로 직접 마주한 신기한 체험 |
우리가 지금 여행하고 있는 이 운남이라는 땅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일까?
공룡화석 앞에서는 인간의 역사가 갑자기 짧아집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공룡과 고생물 관련 화석들이었습니다.
거대한 화석을 보고 있으면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500년, 1,000년, 5,000년이라는 시간을 아주 길다고 생각합니다.
왕조가 생겨나고 사라지고, 도시가 만들어지고,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공룡과 고생물의 시간 앞에 서면 우리가 말하는 몇 천 년의 역사는 갑자기 아주 짧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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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형이 잘 보존된 공룡화석 |
인간이 도시를 만들기 훨씬 전,
나라와 국경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훨씬 전,
이 땅에는 이미 전혀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남성박물관에서는 단순히 ‘옛날 유물을 본다’는 느낌보다 지구라는 행성이 지나온 시간을 바라본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습니다.
왜 운남에서는 이렇게 오래된 생명의 흔적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번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앞서 다녀온 석림(石林)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중국을 걷다] 제5편에서 소개했던 석림 역시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카르스트 지형이었습니다.
거대한 돌기둥 사이를 걸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자연은 얼마나 긴 시간을 들여 이런 풍경을 만들었을까?”
그런데 운남성박물관에 와서 삼엽충과 공룡화석, 고대 생물의 흔적을 보고 나니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석림에서 제가 만난 것이 ‘자연이 만들어낸 시간의 흔적’이었다면,
운남성박물관에서 만난 것은 그 시간 속에서 실제 살아갔던 ‘생명의 흔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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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남성에 살았던것으로 추정되는 갑어류 모형 |
두 장소가 전혀 다른 관광지처럼 보이지만, 제게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됐습니다.
운남이라는 땅이 얼마나 오래된 시간을 품고 있는가.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고생물과 화석을 지나 전시를 계속 따라가면 어느 순간 이야기의 주인공이 달라집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선사시대의 흔적과 생활도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 전까지 보았던 공룡과 삼엽충의 시간이 인간의 역사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돌은 도구가 되고, 도구는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연에서 얻은 돌을 이용해 단순한 도구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사냥하고, 불을 사용하고, 정착하고, 농사를 짓고,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면서 마을과 사회가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라고 배웠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실제 유물을 따라가며 바라보면 단순히 시험을 위해 외웠던 시대 구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자연의 역사 위에 생명의 역사가 쌓였고, 그 위에 다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운남의 역사는 중국의 왕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운남에도 다양한 지역 문화와 문명이 나타납니다.
운남은 중국의 서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고, 지형적으로도 중국 중원과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역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 중원의 역사만으로는 모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대리 여행에서도 남조국과 대리국의 흔적을 살펴봤고, 시조우에서는 백족의 오래된 삶을 만났습니다.
쿤밍에 와서는 이족을 비롯해 운남의 다양한 소수민족 이야기도 접하게 됐습니다.
운남성박물관은 이렇게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의 긴 시간축 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여행 중 박물관을 먼저 보면 좋습니다
박물관을 보고 난 뒤 그 지역을 여행하면 풍경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집니다.
그저 오래된 집이 아니라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보이고,
단순한 산과 바위가 아니라 그 땅이 지나온 시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역시 이번 여행에서 대리와 시조우, 쿤밍과 석림을 먼저 걸은 뒤 운남성박물관을 찾았지만, 오히려 박물관을 먼저 봤다면 앞서 다녀온 장소들이 또 다르게 보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쿤밍을 여행한다면 더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운남성박물관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어른들에게만 좋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쿤밍을 여행한다면 꽤 흥미로운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왕조 이름이나 어려운 역사적 사건은 아이들에게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룡과 화석, 삼엽충과 오래된 생명체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이건 언제 살았던 생물일까?”
“왜 지금은 사라졌을까?”
“이 돌 안에 어떻게 생물의 모습이 남았을까?”
눈앞에 실제 화석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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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을 위한 공룡 인형 모습 |
저 역시 책에서만 봤던 삼엽충을 직접 보면서 신기했으니, 아이들에게는 더욱 인상적인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쿤밍을 이해하는 데는 꼭 필요한 곳
쿤밍 여행을 검색하면 화려한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석림의 거대한 바위가 있고, 취호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운남민족촌에서는 다양한 소수민족 문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박물관은 조금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면 저는 운남성박물관 역시 쿤밍에서 꽤 중요한 장소였다고 생각합니다.
석림이 운남의 자연을 보여줬다면, 운남성박물관은 그 자연 위에 쌓여온 생명과 인간의 시간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관광지가 한 도시의 얼굴을 보여준다면, 박물관은 그 도시와 지역이 지나온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면 가능하면 그곳의 박물관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여행지에서 사진 몇 장을 더 남기는 것보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 더 얻어가는 것이 제가 좋아하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중국을 걷다]에서는 운남을 떠나 중국 동북으로 갑니다
이번 [중국을 걷다] 제6편에서는 쿤밍의 운남성박물관을 걸으며 수억 년 전 생명의 흔적에서 인간의 문명까지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그리고 다음 여행에서는 운남을 떠나 중국의 동북지역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다음 목적지는 랴오닝성 다롄에 위치한 여순(旅顺)입니다.
여순은 아름다운 항구도시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단순한 중국의 관광지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역사가 교차했던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연결되는 수많은 흔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걸었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우리의 역사를 만나게 됩니다.
마침 광복절 즈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 [중국을 걷다] 제7편에서는 조금 특별한 여행을 해보려고 합니다.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기가 아니라, 제가 직접 여순을 걸으며 만났던 우리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었는지,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 땅에서 그 흔적을 바라보며 제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함께 기록해보겠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중국 여순에서 다시 만나는 대한민국의 역사.
다음 [중국을 걷다] 제7편에서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밥무쓰리부팅이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중국을 걷다]
- 제1편|왜 사람들은 대리를 가장 살고 싶은 도시라고 말할까요?
- 제2편|얼하이와 대리고성을 걸으며 만난 느린 대리
- 제3편|대리 시조우, 백족의 오래된 마을에서 만난 가장 느린 하루
- 제4편|왜 쿤밍을 알면 운남이 보일까요?
- 제5편|사진으로는 몰랐습니다, 쿤밍 석림에 들어가니 정말 ‘돌의 숲’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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